The middle, 중산층의 삶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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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급여생활자의 소소한 단편선

The middle, 중산층의 삶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

by 삼봉님 2023.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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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은 무엇일까?

 

갑자기 급여생활자에 대한 카테고리를 시작하게 되면서 왜 갑자기 중산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우연찮게 보던 다큐멘터리에서 꺼낸 중산층에 대한 이야기는 '급여생활자의 소소한 담소'라는 카테고리와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든 급여생활자가 중산층으로 귀속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에 급여생활자의 일반적인 목표가 되는 중산층으로 귀속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원래 중산층은 없었다?!

사실 역사적으로 중산층이란 개념은 없었다고 보는게 맞다.

 

어떤 사회적 희소가치를 가진 사람은 이를 독점하고 지배계층에 속해 있었고 이는 대물림 되었다.

 

반면, 그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피지배계층에 속해 있었고 이 역시 대물림 되었다.

 

과거에는 육체적 힘이 있는 사람이 권력을 차지했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에게 복종했다.

 

귀족 또는 양반의 출신인 사람들은 부와 명예를 차지했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착취를 당했다.

 

적당히 그 중간 지점에서 완충작용을 할 수 있는 계급 또는 계층의 필요성이 없었겠냐는 의문이 들지만 놀랍게도 그랬다.

 

수 천년의 사회적인 인간의 역사를 봤을때 실질적인 중산층이라는 계급 또는 계층은 넓게 봐야 수 백년에 지나지 않는다.

 

 

 

중산층은 나라마다 문화마다 다르다.

퇴근 후 또는 취침 전 시청하는 유튜브 영상 중에 기억에 남는 컨텐츠가 있다.

 

나라마다 중산층을 정의하는 기준이 다르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몇 평이상의 자가를 소유하고 얼마 이상의 연봉을 가지고 중형세단을 보유하고 하는 등의 기준을 제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면에, 프랑스의 경우는 다른 나라의 언어를 하나 이상 구사하고 고상한 취미 하나를 가지고 있어야 중산층이라고 본다는 내용이었다.

 

저기 저 서유럽의 어느 나라가 고귀하고 동아시아의 어느 작은 나라가 천박하다는 관점이 아니다. 

 

우리는 소위 중간 계층이라고 부르는 중산층에 대해서 판단하는 기준이 나라마다 다르고 그 시대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중산층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목표인 동시에 족쇄가 되는 그것, 중산층

모든 급여생활자가 중산층이 목적이 되지는 않는다.

 

반대로, 모든 중산층이 급여생활자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관점에만 봤을 때 일반적인 급여생활자는 중산층으로의 편입을 급여생활자의 시작점으로 생각할 것이다.

 

충분히 맛있고 영양가있는 음식을 먹고

따듯하고 안전한 집에 살고

남루해보이지 않고 때로는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옷을 입으면서 말이다.

 

충분히 아늑하고 긍정적인 접근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드는 생각들은 그것은 동시에 족쇄가 된다는 것이다.

 

먼저, 경제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자.

 

지극히 일반적인 사람의 경우, 급여생활자의 삶을 살게 될 경우 자신의 인생에서 유입될 현금흐름의 총량이 얼추 계산되기 마련이다.

(물론, 특별히 투자에 소질이 있거나 운이 따르는 경우야 다르겠지만 말이다.)

 

문제는 소득의 유입이 예상 가능해지는 만큼 소비 측면에서도 소득에 대응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소득이 없던 학생 시절을 돌이켜 보자.

무한으로 즐길 수 있던 삼겹살, 골목 구석에 위치했던 동네 치킨집의 파닭, 한 판을 오롯이 5,900원이면 즐길 수 있던 피자.

 

소득이 생기면서 같은 종류의 음식에도 조금 다른 걸 생각하게 된다.

외국에서 건너온 냉동 삼겹살이 아닌 녹차나 허브를 먹여 키웠다는 냉장 삼겹살

유명 아이돌이 광고를 하고 감칠맛을 응축한 가루들이 묻혀있는 브랜드 치킨

두툼한 새우와 스테이크가 올라간 피자

들을 널찍한 테이블에 앉아 플라스틱 의자가 아닌 푹신한 의자에 앉아 사람들이 엉키지 않고 즐길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불과 300만원에 못미치는 월급에도 다른 접근과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문제는 소비는 일종의 비가역성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이전의 소비행태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불가피하게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아마 본인을 불행하다고 느낄 가능성이 높다.

 

이와 같이, 소득이 발생함에 따른 마음가짐의 변화는 결과적으로 불행할 가능성을 높히는 진행 과정에 놓여지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회적 측면이다.

 

사회란, 개인들이 만들어낸 일종의 집단 체계이다. 필연적으로 사회에서는 다양한 영역에서의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당위성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학생의 신분에서는 학습을 하기를 기대하고 어른이 되면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학생이 사회생활을 하거나 어른이 되고 나서도 계속 공부만을 하는 사람이 그닥 이해받지 못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사회 속에서 방향성이 예상할 수 없는 무엇가를 시도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게 되기 쉽다. 

 

그냥 그렇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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