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운동

나의 5개월 간 달리기를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

삼봉님 2024. 11. 19.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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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인간이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 특정 시점에 양 발이 지면을 뜨는 움직임 또는 운동 

 

 
 왜 달리게 되었을까?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약 5개월 전이다. 
 
 늘어나는 체지방은 뒤로한 채 유튜브나 보며 낄낄대는 모습으로 수 년을 살아왔다. 응당 피곤한 훈계의 대상이 되었고 이로 부터 도망갈 궁리로 찾게 된 것이 달리기였다.
 
 별로 어려워보이지 않았고 준비도 필요없어 보였다.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에 하나 둘 달리기를 한다는 사람이 보이기도 하고 취미겸 운동겸으로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하나 있었는데 고작 달리기 따위가 나를 지속적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겠냐는 문제였다. 직장생활 8년간 켜켜이 퇴적된 무기력은 그 자체로써 철저한 염세주의 논리구조를 건립했다. 그동안의 여러 시도들이 있었지만 그 무기력의 성벽을 깨부수지는 못했다. 고작 달리기 따위라고 이를 깨낼 수 있을까?
 
 5개월이 지난 지금, 꽤나 성공적으로 이겨냈다고 평가하고 있다.


처음 시작은 미약하지만... 근데, 이 정도로 미약해도 되는거야?

 
 아무 정보 수집없이 아울렛에서 세일하는 러닝화를 하나 사고 천변으로 나가서 뛰기 시작했다.
 
 지금 그 때의 기록을 보면 3km도 안되는 거리를 30분 가까이 달렸다고 나온다. 물론 계속 뛴건 아니고 힘들면 걷고 다시 뛰기를 반복했었다. 그때는 몸이 그럴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뛰다보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지쳐 쉴만한 벤치를 찾는 내 모습과 달리 앞 서 뛰고 있는 사람들 또는 나를 따라 잡는 사람들을 보면 일종의 경외감까지 들곤 했다. 젊음이라는 고귀한 가치가 젊은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듯 노년의 약함도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이 있지만 30대 초반의 나이에 고작 3km도 달리지 못해 헐떡이는 내 모습은 분명 나의 나약함에서 기인한 것이라.
 
 물론 힘들었지만 좋은 점이 하나 있었는데 땀이 흐르고 숨이 차는 탓에 뭔가 운동을 충분히 한 기분이 들었다는거다. 비록 30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름대로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는 느낌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느낀 이런 감정이 반가웠다.
 


그래 좀 알고 해봐야겠다!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예전에 어떤 사람의 인터뷰 또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은 어떤 운동 따위의 것들을 시작할 때 학문적으로 먼저 접근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수영을 하고자 한다면 수영장을 먼저 등록하는게 아니라 도서관에 가서 소위 '수영의 기본원리'  따위의 책들을 보고서 충분히 그 자체에 대해 이해를 한 다음 몸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굳이 그렇게 까지 해야하나 싶기도 했었는데 다른 차원에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왜 그러는지도 알 것 같다.
 
 애정을 쏟지 않으면 쉽게 지워지기 마련이다. 쉽게 온 것은 쉽게 지나가기 쉽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고 유튜브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일련의 과정은 오랜만에 느낀 반가움이 쉽게 지나가질 않기 바라는 애정을 주입시키는 의도적 과정일 수도 있다.
 
 도서관에서 달리기에 관련된 책들을 빌려 봤다. 되도록이면 수필형식의 책들보다는 실용서 중심으로 찾아봤고 그 내용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 책들을 바탕으로 유튜브 알고리즘에 편승하여 추가적인 정보들을 수집했고 공통적인 내용들을 뽑아낼 수 있었다. 기본적인 용어, 달리기 자세, 필요한 용품, 훈련 방법 등 깊게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지식들을 습득했고 그만큼이나 애정 비슷한 것도 생겨난 것 같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평범한 어른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다. 어릴 적 내가 떠올린 평범한 어른의 이미지는 대충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인정받고 그에 맞는 경제활동을 하는 모습, 가정을 이루고 따뜻한 내 집에서 가족들과 같이 드라마를 보며 과일을 깎아 먹는 모습, 주말이면 교외로 나가 푸른 잔디밭 위에 돗자리를 펴놓고 뛰어노는 모습, 부모님께 용돈과 선물을 드리면서 하하호호하는 모습, 가끔 친구들과 맥주 한잔하면서 회포를 모습들이다. 너무나 평범하고 전형적인 어떻게 보면 조금은 진부한 어른의 모습이다.
 
 시간에 흐름에 따른 어른으로 정의된 지금으로서 그 모습들의 면면을 자세히 바라보면 사실 이것들은 잔인하도록 어려운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쟁취하고 나서야 느낄 수 있는 승자의 모습이다.
 
 최소한 그 평범하다는 모습이라도 흉내내고자 한다면 충분히 그에 응당한 자원의 투입이 필요하다. 그 자원의 투입들이 절대적으로 나를 위한 것일까 고민해봤을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무엇인가 열심히 해온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나를 위해서는 그렇지 않은 순간에 종종 허무함이 찾아오곤 한다.
 
 그런데 달리기는 그 연속들 중에서 조금 특이한 순간이 된다. 달리는 도중에 계속적으로 나를 확인하게 된다. 나의 심박수, 발을 딛는 위치, 상체 기울기의 정도, 호흡의 방법 등 나의 몸의 반응에 집중하고 그것에 응답하게 된다. 타인을 위해서만 살아온 것처럼 기만하고 있는 나에게 달리는 순간은 명백한 나를 위한 시간임을 직시하게 한다.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고 있다는 것의 의미

 
 개인적으로 달리기가 좋은 이유 중에 하나는 수행능력의 개선이 상당히 즉각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성취감과 자신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이런 자신감은 다시 수행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이런걸 보면 큰 보상보다 빠르고 즉각적인 보상이 어쩌면 동기부여에 더 효과적일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조금씩 달리기 시작하면서 개인적으로 달리때의 어떤 기준점을 세웠다. 최근 달리기보다 더 나아지겠다는 기준이다. 거리나 속도를 조금씩이라도 늘리거나 어떨때는 한번도 걷지 않고 뛰어보거나 아니면 최소한이라도 조금 더 성장했다고 느낄 수 있게 더운 날씨에 뛰어보거나 하는 조건을 달았다. 재밌게도 이런 것들을 하나씩 달성해나갔고 꽤 재밌다고 느꼈다.
 
 점진적인 발전은 성취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점진적인 발전을 느낄 일이 그닥 많지 않다. 투입된 노력에 비해 발전 정도가 눈에 띄지 않을 뿐더러 보상의 관점에서 보면 투입된 노력과 연관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피드백이 확실한 운동, 달리기가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경주 또는 레이스라고 불리는 그 순간들의 기록과 이야기 

 
 2024년 5월 무작정 신청했던 10km 달리기를 평가받는 날이 어느새 5개월이란 시간이 지난 뒤 다가왔다. 마치 당직인 날처럼 일찍 일어난뒤 부산스러운 준비를 마치고 올림픽공원으로 향했다. 지하철 출구로 가는 길에는 나와 비슷해 보이는, 아니 대부분은 뭔가 더 전문적인 듯한 느낌의 사람들로 공간이 채워져갔다. 공원엔 가을의 시원한 바람이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실제로 온도가 낮아서인지 아니면 다소 긴장해서인지 나는 평소보다 차갑게 느껴졌다.
 

 천천히 준비운동을 시작했다. 주변을 살짝 조깅 하고 유튜브에서 봤던 동작들을 어색하게나마 따라해봤다. 스트레칭 중 자연스럽게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대회에 참여한 여러 단체들 중 S대 달리기 동아리가 눈에 띄었다.  태어나서 본 S대생이라고는 군대에서 한 명이 전부였는데 그곳에는 적어도 열댓명이 넘게 모여있었다. 역시 똑똑해서인가? 라는 생각에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달리기라는 좋은 취미를 깨달았나 하는 약간의 경외감같은게 들었다. 특히 싱글렛 뒷편에 박힌 커다른 S대 마킹은 그 어떤 문신보다 강한 존재감을 주변에 내뿜었다. 그들도 그것을 마치 알고 있는 것 마냥.

 

 준비운동 및 주변 적응을 하다보니 금세 출발할 시간이 되었다. 하프코스의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10km 사람들이 일제히 무리를 지어 출발선 앞에서 출발신호만을 기다렸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 주변을 맴돌았다. 참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탕! 소리와 함께 주자들이 뛰어나갔다. 나도 나름 속도를 높힌채 주로 가장자리로 빠져 주자들을 신나게 앞질러 달려 나갔다. 엄청난 짜릿함이 느껴졌다. 목덜미 쪽에 소름이 쫘악 끼쳤고 심지어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그때 눈시울이 뜨거워졌으리라. 왜 그렇게 감정이 휘몰아 쳤을까 돌이켜 생각해봤다. 아마 이 순간이 새로운 경험이이서였을까? 축제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내가 그동안의 노력을 평가받는다는 상황이 무척이나 반가워서이지 않았을까? 처음 대회를 나가게 되면 소위 뽕에 맞는다고 한다는데 아마 이런 느낌을 두고 말하는게 아닐까 싶었다. 혹시나 오버페이스를 하고 있는건 아닌가 생각하던 찰나 1km 구간이 지났다며 무선 이어폰이 나에게 말해주었다. 
 
' 1km 구간 페이스, 4분 49초 '

 아차! 그 동안 1km 페이스를 5분 내로 달려본 적이 있었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반사적으로 내 들숨날숨을 확인했다. 고작 1km를 넘긴 거리임에도 숨이 가쁜 나머지 입을 벌려 호흡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이는 제대로된 페이스로 달리고 있지 않다는 나만의 경고 신호 중 하나이다. 속도를 낮춰야 했다. 도파민으로 잔뜩 힘이 들어간 두 다리가 더 빨리 달리고 싶다고 보챘지만 난 자제시켜야만 했다. 나름대로 속도를 낮추고 다음 페이스를 확인하기 위해 기다렸다.

 

' 2km 구간 페이스, 5분 8초 '

 

 이 역시 빠른 페이스이다. 1차 목표는 10km를 1시간 내 완주하는 것이였고 혹여라도 운이 좋다면 55분 내로 완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그동안의 경험에도 없고 예상에도 없는 페이스이다. 숨은 가쁘고 콧물은 흐르는데 페이스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마음 속 어느 곳에서 오늘이 인생에서 몇번 없을 주인공이 되는 날임을 자꾸 상기시키고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된 이상 그냥 지금 페이스로 간다.'

'나중에 힘들면 그때 페이스를 조절하면 될거야.'

 

 급작스럽게 전략을 수정하고 지금의 속도를 유지하며 달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때마침 저 앞에 출발 전 광장에서 본 S대 동아리 소속으로 보이는 두 명의 젊은 남녀가 달리고 있었다. 화려한 형광색의 러닝화와 경쾌한 발구름은 아침에 본 느낌을 그대로 증명하고 있었다. 그들을 따라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뭔가 오늘만큼은 꼭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속도를 올려 뒤를 쫒았다.

 

' 5km 누적 페이스, 4분 53초 '

 

 애석하게도 그들은 수 많은 인파 속에서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마 힘들어서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눈 앞에만을 보기에도 벅차다. 땀이 꽤나 흐르고 있고 숨도 가쁜 편이다. 하나 다행인 점은 더 나빠지진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절반을 넘었으므로 여기서 더 악화되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반사적으로 들었던 생각은 효율적으로 뛰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곳저곳에서 주워들은 지식들과 그동안 달리면서 연습했던 동작들을 떠올렸다. 사람 뒤에서 뛰면 공기역학적으로 저항을 줄일 수 있다라던지 발이 무거워질때는 팔을 좀 더 뒤로 세게 친다던지 몸의 기울기는 15도 앞으로 기울여야 한던지 온갖 것들 중에 지금 상황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그대로 옮겼다. 실제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래야만 했다.

 

 이제 중후반 구간을 달리고 있다. 언덕을 어렵게 오르고 나니 초반 경주 대상으로 삼았던 S대생들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도 나처럼 충분히 힘에 부치고 있으리라. 잠시 그들을 따라갈까 생각했다가 이내 마음을 접었다. 물론, 조금 무리를 하면 그들에게 다가갈 수도 있고 운이 좋으면 그들을 제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목표는 오늘 아침에 급작스레 발화된 찌질한 열등감의 결과물이었을 뿐이다. 5개월 동안 준비하고 변화하면서 느꼈던 새롭고 반가운 감정들은 확실히 결이 다르다. 그렇게 내 시야에서 그들을 지웠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나의 달리기를 한다.

 

 ' 8km 구간 페이스, 5분'

 ' 8km 누적 페이스, 4분 55초'

 

 구간 페이스가 누적 페이스보다 늦어지고 있었다. 즉, 내가 달려온 속도보다 지금 최근 달린 속도가 늦다는 내가 뒤쳐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기존에 목표했던 60분과 55분 이내 완주가 가능해보였지만 50분 언더는 사실 조금 어려워보였다. 지금까지의 페이스는 그동안의 연습 데이터에도 없었고 현재 몸의 상태를 봤을때도 지금까지의 페이스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두 다리는 모래주머니를 매단 듯 무거웠고 온난화로 벌크업을 해버린 10월의 해는 내 시야를 흐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 9km 구간 페이스, 5분 15초'

 

 무거워진 몸 상태는 숫자로 대답을 했다. 힘들어서 계산이 쉽지는 않았지만 이정도 페이스 상태라면 50분 이내로 완주하는 것은 쉽지 않을것 같았다.

 

 49분 59초와 50분 0초는 단 1초 차이지만 그 가치는 1초 이상이 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동안의 나의 역사 속에서 그 마지막 단 1초를 밀어붙이지 못해 숱한 좌절과 후회를 경험해보지 않았던가. 정신적으로 강하게 몰아부칠 필요가 있었다.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고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그 1초를 잡고 49분 59초를 달성해야만 한다고 설정했다. 울돌목에서 왜놈들을 맞이하던 장군님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그때 장군님은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셨을지도 모르겠다. 한 편의 성장드라마의 주연이라도 된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나서 움직임에만 집중했다. 

 

 급수대에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기 위해 달리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종이컵을 낚아챘다. 열정적인 낚아챔의 반대급부로 절반 가량의 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나마 살아남은 절반의 물을 거침없이 입 속으로 털어냈다. 남은 물방울들마저 건조해진 입안이 아닌 가슴팍을 적셨지만 오히려 이 순간 주인공의 치열하고 처절한 감정을 부각하는 미장센으로써 나쁘지 않았다. 부디 이 순간을 주최측에서 아웃소싱 맡긴 사진 업체에서 포착했기를...

 

 반대편 주로에서는 가족, 연인들로 보이는 몇 무리가 다가오고 지나가길 반복했다. 좋은 날씨에 집 앞 공간에 나들이 겸 나온 것으로 보이는 이들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 서려있었다. 어떤 점심을 먹을지 담소를 나누며 걷는 이들은 얇은 팔과 다리를 연방 휘저으며 땀과 열기로 구겨진 내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조소를 지으며 우스개 대상으로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지금 그런 시시콜콜한 트집거리를 하나하나 신경쓸 상황이 아니다.

  난 지금 명백한 전투 중이다.

 

 결승선에 다가올수록 주변에 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확연히 줄어 들었다. 나와 같이 치열한 전투 중인 사람들 몇몇만 주변에 달리고 있다. 출발 당시 같이 서 있던 수 많은 사람들 중에 어중이떠중이들은 제끼고 잘난 놈들은 먼저 보내고 비슷한 사람들 셋 넷 정도만이 내 시야 안에 있다. 게 중 한 사람은 연신 숨을 들이키고 내쉬면서 으악으악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고개를 떨군 채 어떻게든 달리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다. 난생 처음보는 사람들이지만 각각 서로를 인지하고 있을거다. 산후조리원에서 처음 만난 초보 엄마들의 공감대처럼 말하지 않아도 아는 그 무언가 말이다. 하지만 애석한 것은 분명 이들 중 일부는 50분 내에 들어오고 일부는 아쉽게 몇 초 차이로 50분을 넘어서 들어온다는거다. 

 

 전방에 커다란 손바닥에 인형탈을 쓴 관계자 한 분이 응원을 하고 계셨다. 손바닥을 치고 가면서 힘을 내라는 의도였던 것 같다. 손바닥을 멋드러지게 치니 놀랍게도 힘이 조금 더 생기는 것 같았다. 이참에 마지막 스퍼트를 냈다. 이제부터는 자세가 어떻게 됐건 호흡이 어떻게 됐건 상관하지 않기로 하고 있는 힘 없는 힘을 모두 쏟아냈다. 눈 앞에 결승선이 보이기 시작했고 와이프가 기다리고 있을 종착지에 가장으로서 멈춘다는 것을 있을 수 없었다. 마지막까지 발구름을 멈추지 않았다.

 

 ' 10km 구간 페이스, 4분 9초 '

 ' 10km 누적 페이스, 49분 4초 '

 

 그렇게 나의 첫 10km 달리기는 끝이 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깟 달리기 하나 하면서 별의별 주접을 다 떨었구나 싶다. 고작 10km에 그 정도 기록을 가지고 말이 참 많기도 하다.

 

 왜 그랬을까? 소위 어른이라는게 되어가면서 주변부의 삶을 살고 수단으로 이용됨이 익숙해졌다. 실제로 그런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거다. 그러기에 나의 의지대로 목표하고 성취하는 영역이 누락되어 왔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그 부분을 오랜만이라 칠해버린 듯하다. 반가웠다. 가끔은 주접이더라도 나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순간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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